A형 : 깔끔을 떠는 완벽주의형인데다가 성실한 실중파입니다.

 

유난히 다른 사람의 이목을 신경쓰며 항상 몸가짐을 단정하게 하고 절대 미움받지 않도록 신경쓰는 편입니다.

또한 조직에 잘 적응하며 만약 회사가 부도난다면 주머니라도 털어서 회사를 살리려는 스타일이라고나할까요?

 

가까이할 음식-- 야채를 많이 먹고 고기보다는 생선이나 닭고기를 먹는 것이 좋으며 특히 콩류가 좋다.

멀리할 음식-- 유제품, 육류, 밀, 감자 등은 A형의 신진대사를 방해한다.

다이어트 아군-- 대구, 고등어, 두유, 콩, 국수, 당근, 파슬리, 호박

다이어트 적군-- 고기, 감자, 피망, 토마토, 파파야, 오렌지, 바나나

추천요리-- 콩나물굴밥, 오징어섞어찌게, 꽃게매운탕, 두부완자튀김, 고등어된장조림, 닭칼국수

 

B형 : 손재주가 많고 잔머리를 잘 굴리며 자유분방하여 규칙, 속박을 싫어합니다.

 

그래서 조직생활보다는 홀로 하는 직업이 맞으며, 집중력이 강해 끝까지 파고드는 경향이 있습니다.

 

가까이할 음식-- 잡식성으로 무, 고기, 달걀, 유제품과 대구, 고등어 등 생선류도 좋다.

멀리할 음식-- 소화력이 약하므로 갑각류, 닭고기와 옥수수, 국수, 땅콩 등은 피한다.

다이어트 아군-- 치즈, 요규르트, 시큼치, 가지, 무, 피망, 바나나

다이어트 적군-- 옥수수, 땅콩, 닭고기, 밀가루 제품, 토마토, 참기름지

추천요리-- 양고기구이, 등어소금구이, 불고기, 비프스테이크

 

AB형 : 정의감과 비판 정신이 투철한데다가 잠재의식 속의 튀고자 하는 욕구가 강합니다.

 

하지만 머릿속으로 항상 컴퓨터를 돌리고 있는 AB형은 무슨 일이든 척척 해결하는 만능 해결사며 게다가 탁월한 예술적 감각까지 겸비하였지만 마지막 순간에 포기해버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가까이할 음식-- 두부, 고기와 유제품에 생선이나 달걀, 애채를 더하면 금상첨화다.

멀리할 음식-- 육류, 밀, 메밀, 국수, 욱수수, 후추, 바나나, 오렌지

다이어트 아군-- 고등어, 치즈, 요구르트, 현미, 샐러리, 오이, 레몬

다이어트 적군-- 육류, 밀가루 등을 피하지 않으면 금세 체중이 불기 쉽다.

추천요리-- 두부전골냄비, 양고기구이, 당근과 치즈샐러드, 생선양념구이

 

O형 : 타고난 보스 기질이 있고 항상 좋은 면만을 보려하는 둥글둥글한 성격으로 인해 사교성이 뛰어난 편입니다.

 

게다가 상당히 현실적인 반면 따뜻하고 인정 많은 로맨티스트적 요소까지 겸비했지만 반면에 남에게 기대려는 성향이 있습니다.

 

가까이할 음식-- 과일, 매실, 살구, 건포도 등이 좋고 시금치는 혈액을 깨끗하게 해준다.

멀리할 음식-- 빵이나 파스타, 곡류, 두류 등을 자주 먹으면 소화가 잘 안된다.

다이어트 아군-- 쇠고기, 간, 고등어, 시금치, 브로컬리, 마늘

다이어트 적군-- 옥수수, 파스타류, 베이컨, 귤, 딸기, 요구르트

추천요리-- 시금치깨무침, 비프스테이크, 쇠고기크로켓, 과일샐러드

 

출처 : ☆바보는 항상 결심만 한다☆
글쓴이 : 애드킹스 원글보기
메모 :

초콜릿과 케이크를 입에 달고 산다
같은 탄수화물이라도 당분이 많아 몸 속에서 산화 작용이 많이 필요한 케이크나 초콜릿 등은 피부 노화를 촉진시키는 주범. 대신 포도당으로 변하는 속도가 빠른 구운 감자, 흰 빵 등을 섭취할 것.
애교스러운 눈웃음이 특기다
연구결과에 따르면 눈웃음을 짓는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눈가 잔주름과 표정 주름이 더 많다. 피부 탄력이 떨어지기 시작하는 20대 이후부터는 습관적인 표정이 굵은 주름의 원인이 될 수 있다. 눈보다는 입으로 웃는 연습을 할 것.
현기증 날 때까지 운동한다
적당한 운동은 건강과 피부 미용을 위한 필수 덕목. 하지만 운동선수들이 운동을 접는 그 순간부터 쭈글쭈글해진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가? 게다가 격렬한 운동을 할 때 표정을 일그러뜨리는 습관은 잔주름을 듬뿍 만들어줄 것이다.
옆으로 누워야 잠이 솔솔 온다
잘 때 생기는 슬리프 라인(sleep line)은 눈가 주름의 주범. 베개는 반드시 뒤통수 쪽으로 베고 자야 한다. 너무 높거나 낮은 베개도 금물. 목과 턱살이 겹쳐 주름이 생기고 얼굴이 붓게 된다. 팔을 괴고 자거나 엎드려 자는 것도 마찬가지.
담배 없이는 못 산다
담배는 피부에 공급되는 산소량을 적게 하고 노화의 원인이 되는 래디컬(유해산소)의 형성을 촉진시킨다. 흡연자가 주름이 생길 확률은 비흡연자의 3배. 그러나 비흡연자도 안심할 순 없다. 담배 연기에 자주 노출되면 각질층의 수분 함량이 떨어져 피부가 건조해지기 때문.
눈을 자주 비빈다
이 무의식적인 습관은 눈가 잔주름과 다크서클을 촉진시킨다. 잦은 눈 화장 역시 잔주름의 지름길. 눈 주위의 연약한 피부에 자극을 주기 때문이다. 눈썹, 쌍꺼풀 사이에 낀 화장 잔여물도 노화의 원인이 되므로 순한 아이 전용 리무버로 깔끔하게 닦아내자.
눈가에도 스킨을 촉촉하게 바른다
사용설명서에는 바르지 말라고 되어 있지만 아이크림도 따로 안 바르는데 빼먹으면 어쩐지 섭섭해서…. 그러나 알코올이 함유된 스킨을 눈가까지 바르면 눈가 피부의 유·수분 밸런스가 깨지면서 주름이 생기기 쉽다.
극세사 타월을 매일 사용한다
피부가 매끈매끈해지는 즉각적인 효과 때문에 스크럽 대용품으로 널리 환영받는 극세사 타월. 그러나 너무 자주 사용하면 피부 보호막인 각질층이 손상되어 피부가 건조해진다. 제거해야 하는 건 오직 ‘묵은’ 각질. 건성피부는 주 1~2회, 지성피부라도 3회 이하로 사용하자.
안 해본 다이어트가 없다
각고의 노력 끝에 결국 뼈와 가죽만 남은 당신. 권장 섭취량보다 절대적으로 적은 칼로리 섭취로 비타민, 미네랄, 필수 지방산 등이 결핍되어 윤기 없이 푸석푸석한 피부가 되어 있을 게 분명하다.
화장품을 얼굴 전체에 비벼 바른다
항상 아래에서 위로 가볍게 쓸어 올리듯 바르는 습관을 기르자. 위에서 아래로 밀어내거나 무자비하게 비벼 바르는 버릇은 피부를 처지게 만든다. 불독 강아지 같은 심술보를 갖고 싶지 않다면 당장 바르는 습관부터 바꿀 것.
자외선 차단제를 과감히 생략한다
자외선은 멜라닌 색소를 자극할 뿐 아니라 콜라겐과 엘라스틴까지 파괴한다. 자외선을 받은 피부 혈관이 늘어지거나 비정상적인 혈관 가지들이 생성되어 주름과 기미로 진행된다는 최근 연구결과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젖은 얼굴로 쏘다닌다
날씨가 덥다고 세수한 다음 물기도 닦지 않고 밖을 마구 쏘다니는 건 자살 행위다. 젖은 피부는 마른 피부보다 자외선 투과율이 4배까지 증가한다. 운동 후나 세안 후에는 빨리 물기를 닦아야 한다. 젖은 머리로 외출하는 것도 삼갈 것.
선탠광이다
바다보다 모래사장을 더 좋아하는 당신이라면 일광이 강한 오전 11시부터 오후 3시까지만큼은 피할 것. 한낮에 자외선 차단 크림도 없이 태닝을 즐긴 후 몸을 찬찬히 관찰해보라. 눈가 잔주름이 두 배는 늘었을 것이며, 없던 점이 몸 여기저기에서 발견될 테니.
물은 밥 먹을 때만 마신다
수분 섭취량은 피부 노화와 보다 직접적인 관계가 있다. 20대 초반이라면 촉촉한 수분 크림과 하루 1L 이상의 생수만으로도 탱탱한 피부를 유지할 수 있다. 당신이 흡연자라면 적어도 하루 1.5L 이상의 물을 마셔야 함을 명심할 것.
에어컨 온도를 18°C 이하로 맞춘다
에어컨이 가동되는 건조한 실내에 오래 있으면 피부 수분을 공기 중에 빼앗겨 노화가 가속화된다. 겨울에 난방 온도를 높이는 것도 마찬가지. 실내·외 온도가 심하게 차이 나지 않도록 냉방 온도를 조절하고 피부에 건조감이 느껴지면 워터 스프레이를 뿌려주자.
곧 죽어도 더운물로 샤워한다
계절에 관계없이 온수 샤워는 10분 이내로 끝내야 한다. 피부에 필요한 유·수분을 급속도로 빼앗아가기 때문. 미지근한 물로 재빨리 샤워한 후 보디 미스트 등으로 수분을 공급해주자.
잠자는 시간이 중구난방이다
밤 시간에 잠을 자지 않고 깨어 있으면 낮 동안 손상된 피부가 재생되지 못해 피붓결이 거칠어지고 탄력도가 떨어진다. 밤샘 후 피부 유·수분도를 측정해보면 수분은 15~18% 감소해 있고 유분은 20%나 많아져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출처 : ☆멋을즐기는사람들 ▶스타일짱◀
글쓴이 : 하얀바람 원글보기
메모 :

하루에도 수십번씩 마음이 일어났다 사라지기를 반복한다.
인연따라 어떨 때는 화가 나기도 하고
또 인연이 다하고 나면 화가 사라지기도 하며,
또 상황 따라 어떤 때는 불같은 욕심이 치솟기도 하고
질투심, 고민, 집착, 증오, 사랑 등 수많은 감정이 일어나고 사라지기를 반복한다.

하기야 우리의 인생이란 것이 이런 감정적 기복의 연장이 아닌가.
그런데 그런 마음은 혼자서 독자적으로 일어나고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절대 저홀로 일어나는 법은 없다.
그럴만한 인연, 상황이 생겨야 그런 마음이 일어나는 것일 뿐이다.

평소 가깝던 친구가 별일 아닌 것으로 갑자기 욕을 한다면
그런 상황에 따라 마음에서는 화가 일어난다.
그래서 같이 욕도 하고, 때로는 주먹질까지 하게도 된다.
그렇게 같이 붙잡고 화를 내고 싸우고 나면 마음이 불편하다.
그 때부터 그 친구와의 관계는 불편해지고, 괴롭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그 친구가 그 때는 좋지 않은 일이 있어
나도 모르게 그랬다며 사과를 요청하게 되면 또 다시 마음은 금새 풀어진다.

이처럼 인연따라 우리 마음은 일어났다 사라진다.
때로는 이렇게 작은 화가 일어나고 사라지기도 하지만,
또 때로는 도저히 억누르기 어려울 만큼 큰 화가 생기기도 하고,
삶에서 도저히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의 경계로 끝간데 없이 괴로워하기도 한다.

그런데 문제는 이런 상황이, 이런 인연이
우리 삶 속에서는 끊임없이 생겨난다는 점이다.
끊임없이 우리 마음을 복잡하게 하는 경계가 생겨나기 때문에
우리 삶도 끊임없이 중심을 잡지 못하고
그 경계에 휘둘려 마음이 괴로움을 좀처럼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다.

우리 인생의 일생일대의 가장 큰 문제는
바로 이처럼 인연따라 일어나는 마음을
어떻게 잘 제어하고, 다스릴 수 있는가 하는 점일 것이다.

명상이라는 것, 수행이라는 것도
이처럼 인연따라 일어나는 마음을 어떻게 잘 다스릴 수 있는가에 대한
가르침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면 과연 그 마음을 어떻게 다스릴 수 있는가.
친구가 별일도 아닌 것을 가지고 욕을 해서 화가 났다고 생각해 보자.
혹은 직장 상사가 '그것도 못해?' 하며 사람들 앞에서 화를 냈다고 생각해 보자.
조금 예민하게 그 순간 욱하고 올라오는 화를 살펴보자.

친구가 욕을 하는 순간, 직장 상사가 '그것도 못해'하며 사람들 앞에서 무안을 주는 순간,
그 마음을 조금 깊이 있게 지켜보자.
그 순간 욕을 얻어 먹는 순간은 어떤가.
그 순간에 내가 있는가?
그 순간에 욕을 얻어 먹는 내가 있는가?

조금 깊이 지켜보라.
욕을 얻어 먹는 바로 그 순간 '나'는 없다.
오직 그 순간에는 '화'만 존재한다.
아주 맹목적이고, 본능적으로 당장에 생각할 것도 없이 '화'가 올라온다.
그것은 아주 자연스러운 것이다.

이 세상 모든 것은 인연법이라는 이치에 따라 움직이기 때문에,
인연이 생기면 그에 상응하는 과보가 뒤따른다.
그리고 그것은 아주 자연스러운 것이다.
욕을 하는데도 화가 나지 않는 사람이 있는가?
아무리 성숙하고, 젊잖으며, 수행력이 있는 사람일지라도
대뜸 욕을 얻어먹고도 당장에 화가 올라오지 않는 사람은 없다.

그것은 몽둥이로 한 대 얻어 맞고 나면
자연스럽게 그 부분이 아픈 것하고 다를 것이 없다.
그것은 아주 자연스럽게 아프다.
마찬가지로 욕을 얻어 먹으면 자연스럽게 화가 올라온다.

그것은 전혀 문제될 것이 없다.
때려서 아픈 것이나, 욕을 얻어 먹고 화가 나는 것이나
그것은 이 세상의 이치, 인연법의 이치에 따른 아주 자연스러운 것이다.
그걸 문제삼을 필요는 없다.
그것을 가지고 '나는 왜 이렇게 화를 잘 내지?'하고 괴로워 할 것도 없다.

이처럼 인연이 서로 화합하여 접촉하는 순간에는
'나'라는 관념이 사라지고,
아니 '나'라는 관념이 생길 것도 없이
저절로 '화'라는 것이 튀어 나오는 것이다.

지금 여기까지 문제될 것이 무엇이 있는가?
오히려 욕을 얻어 먹고도 화가 안 일어나거나,
때리는데도 아프지 않다면 그것이 오히려 문제인 것이지,
욕을 얻어 먹고 화가 난다는 것은
아주 자연스럽고 지극히 정상적인 사람이라는 반증이다.

그것은 자연의 변화라는 흐름에 따라
구름이 생겼다가 소멸하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
인연따라 수증기가 구름이 되었닥가 다시 비가 되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
봄이 오면 꽃이 피고, 여름이 오면 숲이 우거지고,
가을이면 수확을 하며 열매를 맺었다가 단풍으로 떨어지고,
겨울이 되면 앙상한 가지가 남게 되는
이 자연스러운 자연의 변화와 무엇이 다른가.

인간도 자연의 일부이기에,
우리 인간에게도 자연의 변화와 같은
자연스러운 변화가 끊임없이 계속될 수 밖에 없다.

 

 

이처럼 지금까지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
그런데 문제는 바로 이 다음의 순간부터 생기기 시작한다.
욕을 얻어 먹는 순간 화가 났다면 그게 뭐 어쨌단 말인가.
아주 자연스러운 이치인데 그것을 가지고 시비할 것이 무엇인가.
전혀 거기에는 문제될 것이 없다.

그런데 사람들은 그 자연스럽고도 당연한 결과에 시비를 건다.
즉, 그 순간에 아상을 개입시킨다.
바로 직전까지만 해도 '화'만 있었지 거기에 '나'는 없었다.
그저 '화'가 났을 뿐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이 화에 '나'를 개입시키기 시작한다.
그저 인연따라 자연스럽게 일어난 '화'를 자기화하기 시작하는 것이다.
즉, '나는 화가 났다' '나는 너 때문에 화가났다'
'너가 나를 화나게해?' '너가 나에게 욕을 해'하고
거기에 '나'를 개입시키기 시작하는 것이다.

그 때부터 그 '화'는 객관적이고 자연스런 것이 아니라
나를 괴롭히는 것이 되기 시작한다.
그러면서 연이어 그 '화'에
'내 생각'을 주입하기 시작한다.

'감히 너가 나에게 욕을 해?'
'화 내는 것은 나쁜 것이니 화를 참아야 해'
'저 사람이 내게 화를 내니 다른 사람이 나를 어떻게 볼까'
'저 친구가 나를 우습게 생각하고 무시하고 있구나'

온갖 생각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떠오르기 시작한다.
그 생각들은 아주 미세하고 순식간에 지나가는 생각일 지 모른다.
그러나 그 생각들의 이면에는 분명 '나'라는 아상이 개입되어 있다.

이제 그 '화'는 자연스러운 것이 아니다.
그 '화'는 '내 화'가 되어버렸다.
'욕을 얻어 먹은 나',
'화를 내면 안 되는 나',
'무시당하는 나'
그렇게 수많은 '나'가 생겨나게 된다.

이제 조금 전 상황과는 전혀 다른 상황이 되어버렸다.
조금 전 상황,
즉 '나'가 개입되기 이전,
오직 '화'라는 것만이 있던 상황에서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그런데 거기에 '나'가 개입되면서 그것은 '괴로운' 일이 되어버렸다.
이제 나는 그 화로 인해 괴롭고 답답하다.

만약 처음 '화'가 일어날 때
그 때 '나'를 개입시키지 않고
다만 '화'를 자연스러운 것으로 내버려 두고 다만 바라보기만 했다면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화는 인연따라 자연스럽게 일어났기 때문에
가만히 내버려 두면 스스로 타오를 만큼 타올랐다가
인연이 다하면 저절로 소멸될 것이다.

마치 인연따라 자연스럽게 구름이 일어났다가
저절로 구름이 짙어져 먹구름으로 변했다가
인연이 다하면 저절로 비로 내려 대지를 적시는 것과 같다.

그것은 아주 자연스러운 자연의 이치다.
우리 몸 또한 자연이기 때문에 자연의 이치를 따른다.
그저 내버려두고 가만히 지켜보기만 하면
꽃이 피었다가 사라지듯이 스스로 소멸되었을 것이다.

 

 

'화'를 '내 것'으로 붙잡지 말라.
거기에 '나'를 개입시키는 순간,
온갖 '내 생각' '내 분별'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달려들 것이다.
연이어 불같은 감정이 생겨나고,
불같은 말을 내뱉으며, 몸 또한 불같은 행동을 시작하게 될 것이다.

욕을 얻어 먹으므로써 자연스럽게 화가 일어났다면
다만 내버려두고 지켜보기만 하라.
마치 내 일이 아닌 것 처럼,
그저 영화나 드라마를 보듯 그냥 순수하게 지켜보기만 하라.

거기에 해석이나 판단, 분석, 생각, 아상을 개입시키지 말라.
상대방의 행동에 그 어떤 판단이나 해석을 갖다 붙이지 말고,
내 화에 그 어떤 도덕적 판단이나, 분별, 구분을 가져오지 말라.

'나'와 '화'를 구분하지 말라.
관찰자와 관찰되어지는 대상을 나누지 말라.
다만 바라보는 것, 그것이 되라.
'화'가 났다면 그저 '화' 그것이 되는 것이다.
'나'와 '화'를 구분하고 차별하는 순간
불난 집에 기름을 붓듯 그 화는 생명력을 얻게 될 것이다.

진리의 가르침은 무아, 즉 '나는 없다'는 것이다.
단지 인연따라 '화'가 났을 뿐이지 거기에 '나'는 없다.
그저 '화'가 있을 뿐이다.
거기에 화난 나는 없다.

내 스스로 '내가 화났다'라고 해석하고 판단하는
바로 그것이 없는 나를 실체적인 있는 나로 만드는 것일 뿐이다.
나를 실체화하게 되는 것이 모든 문제의 시작이다.

없는 것을 있다고 생각하니 문제가 커지고 만다.

화는 중립이다.
좋고 나쁜 것이 아니다.
그저 자연스러운 것이다.
사실은 '화나는 상황'이 있을 뿐이지 '화'는 없다.

괴로움도 중립이다.
사실은 괴로움이라는 것도 이름붙인 것에 불과하지
그것도 괴로운 상황일 뿐이다.
다만 '괴로운 상황'이 있을 뿐, '괴로움'은 없다.
마찬가지로 '괴로운 상황'이 있을 뿐이지
'괴로운 나'는 없다.

괴로움이라는 것도, 괴로운 나라는 것도,
화라는 것도, 화를 내는 나도
실제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다만 내가 실체하는 것으로 착각하고 해석을 그렇게 했을 뿐이다.

그러니 '나'를 개입시키지 않고
다만 있는 그대로 자연스럽게 놓아두고
그저 바라보기만 하면 모든 문제는 더이상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렇기에 관(觀) 수행이라는 것이
무아(無我)에 이르는 수행이며,
아상(我相)을 타파하는 수행이고,
연기 법칙을 깨닫는 명상 수행인 것이다.

다만 '화'가 일어난
그 연기적 인과성, 즉 연기적 상황을 있는 그대로 볼 뿐,
거기에 그 어떤 판단이나 해석을 가하지 않는 것,
그것이 수행이요, 명상이다.

그랬을 때 그 '화'에 '나'를 개입시키지 않으며,
'나'와 '화'를 나누지 않으며,
자아라는 관념을 실체화하지 않고,
'나'라는 상을 만들어 내지 않는다.

이것이 바로 인연따라 일어나는 마음을
잘 다스릴 수 있는 명상의 길이다.

 

 

[사진 : 고양 흥국사의 가을 새벽]

출처 : 칼럼
글쓴이 : 법상 원글보기
메모 :
뉴스: 눈이 피로할 때 마시면 좋은 '음료수'는?
출처: 리뷰스타 2006.08.14 14:53
출처 : 건강
글쓴이 : 리뷰스타 원글보기
메모 :

+ Recent posts